산행 이야기

봉화 청량산

레드얼더 2015. 8. 22. 23:30

산행일시: 2015년 8월 22일 (토)
산행지: 봉화 청량산 (870 m)
산행코스: 모정(선학정) - 입석분기점 - 응진전 - 경일봉 - 자소봉 - 연적봉 - 하늘다리 - 장인봉 (청량산 정상) - 하청량 - 주차장
산행거리: 8.05 km
산행시간: 4시간 31분





청량산 정상에 올라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햇빛은 머리위에 비추고 은하수는 귓가에 흐르네.
아래로 구름바다 굽어보니 돌아보는 감회가 끝이 없구나!
다시 생각컨데 황학을 타고 신선이 사는 삼산으로 유람을 가는 듯 하구나!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다 느낀 벅찬 기분을 글로 남긴 것이다.

주세붕 뿐이 아니다.
청량산에는 김생, 원효대사, 의상대사, 최치원 그리고 공민왕과 퇴계 이황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들의 전설이 산세만으로는 부족한 청량산을 명산의 반열에 끄집어 올려 놓았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암 월출산, 청송 주왕산 그리고 청량산을 두고 우리나라 3대 기악(奇岳)이라 칭송한다.
주왕산은 가본 적이 없어 뭐라 할말이 없으나 월출산과 청량산은 같은 듯 또 많이 다르다.
일단 세월이 깍아놓은 듯한 화강암의 월출산과 달리 청량산은 누군가가 세워놓은 역암 기둥의 모습이다.

나는 어이없게도 청량산에서 방파제의 콘크리트 테트라포드를 떠올린다.
테트라포트의 뭉툭한 모양 탓인지 아니면 암벽이 천연 콘크리트라는 역암 바위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경일봉을 지나 능선을 따라 걷다가 자소봉에 오르니 조망이 그만이다.
마침 종일 찌푸리던 하늘도 잠깐이지만 밝은 얼굴을 보여준다.






연적봉에서 건너다 본 탁필봉과 자소봉의 기세가 우렁차다.
산세로 따지자면 자소봉이 딱 정상감이라는데, 성적(해발고도)에서 장인봉에 밀리니 어찌하랴!

연적봉은 연적을 닮았다 하여 탁필봉은 붓끝처럼 날카롭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자소봉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허나 주변의 탁필봉과 연적봉의 이름을 보면 자소봉 또한 먹물이 가득찬 선비의 머릿속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게도 승려들은 자소봉을 보살봉으로 근동 사람들은 탕건봉으로 부른다니 무학대사의 돼지 눈이요, 제 눈의 안경이로다.






청량산 산행의 백미는 하늘다리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다리 양쪽 끝단의 역암 절벽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은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아무래도 청량산 하늘다리는 다리로서의 역활보다 조망대로서의 가치가 훨씬 크지 않을까 싶다.




건너다 보고...


내려다 보고...


뒤돌아 보고...



하늘다리를 건너면 곧이어 청량산 정상인 장인봉이 나온다.
물론 정상에 오르려면 급경사 계단이라는 가볍지 않는 대가를 치뤄야 하겠지만...

장인봉은 본디 대봉이라 불렀는데, 이를 주세붕이 중국 태산의 장악(丈岳)을 본 따 장인봉으로 고쳤단다.
하여 봉우리 이름을 장인봉에서 대봉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산악인들이 많지만 그게 어디 쉽겠는가?
그나저나 그놈의 외국물 좋아하며 따라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구나.






외국물 소리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산행 전날 금요일, 한겨레신문에서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는 책의 소개글을 읽었다.
그렇잖아도 청량산까지 왕복 9시간이 걸리는 버스 이동 시간을 어찌 때울까 싶었던 나는 영풍문고에 들러 얼른 한 권을 집어왔다.
두 시간 남짓이면 완독하기에 충분한 양의 책인데 풀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흥미로울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예를 들어, 오늘 응진전 주변에서 찍은 가는잎그늘사초다.
가는잎그늘사초는 일본말 호소바히카게스게(細葉日陰菅)를 그대로 번역해 놓은 것이란다.
그렇다고 가는잎그늘사초가 애초부터 우리말 이름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버젓이 산거웃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었다.

가는잎그늘사초는 산거울이라는 우리말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허나 산거울조차 귀에 쏙 들어오는 멋진 이름인 산거웃(거웃은 수염의 옛말)을 누군가가 잘못 옮겨놓은 것이라니...
이래저래 제 이름을 뺏긴 청량산 대봉도 안타깝고 작은 들풀인 산거웃도 안타깝다.




'산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암산 물매화  (0) 2015.09.02
오랜만의 푸른 하늘  (0) 2015.08.26
중머리재 소방헬기  (0) 2015.08.14
문경 대야산과 꼬리진달래  (0) 2015.08.09
옹성산 머루와 개암  (0) 201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