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드러진 새 검을 구했으니 휘둘러 보고 싶었다.
시시한 상대는 싫은지라 고르고 고른 것이 무등산 물매화다.
지리산 나래회나무와 검을 섞어보고 싶지만 약속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
지금까지는 30마(35mm 환산 45mm)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길이가 짧은데다 점차 무뎌지니 단칼에 청부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진다.
주변 사람들은 점점 내 능력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 같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원래 목수의 진정한 실력은 연장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던가?
새로 마련한 검은 소니 철기방의 90마(35mm 환산 90mm)다.
이 검이 완성되기를 1년 가까이 기다려 왔었다.
청심봉에 올라 하늘을 보니 맑지도 그렇다고 흐리지도 않다.
난 이런 날이 좋다.
강렬한 직사광선 탓에 해를 등지려고 눈치싸움을 해야하는 그런 상황은 딱 질색이다.
게다가 내가 해를 마주보게 되는 심히 불리한 상황도 피하고 싶다.
사실 보름 전 노고단애 결투에서도 다섯 번을 휘둘렀으나 한 차례만 먹혔었다.
그나마 강한 햇살 탓에 단 한 번의 칼질마져도 제대로 꽂질 못했던 것이다.
장불애에 도착하여 물매화 거처를 찾았지만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끈끈이주걱을 찾고 있는 여인네를 만나 길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물매화는 연공중이었다.
들꽃심공으로 꿰뚫어 본 바로는 연공을 마치려면 열흘의 기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허공에 검을 두세 차례 휘두른 다음 열흘 후를 기약하며 자리를 뜬다.
비록 정면은 아니었지만 연공 중인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은 중원의 고수에게 있어 씻을 수 없는 수치다.
하지만 내가 다녀갔다는 흔적 정도는 남겨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90마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았는데, 막상 들고 나가니 많이 낯설다.
화각이 낯설고 오축손떨방이 낯설고 덕지덕지 달려있는 버튼들이 낯설다.
(오축손떨방은 렌즈에서 2축을 바디에서 3축을 제공한단다.)
장불재에서 중머리재를 거쳐 토끼등으로 내려오면서 시험삼아 여기저기 휘둘러봤으나 결과는 죄다 서툰 칼질이다.
내 사진 내공이 일천할 뿐만 아니라 아직은 90마, 그리고 함께 구입한 새 카메라에 익숙치 못한 탓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아쉽다.
봉황대를 지나면 양애깡(생강과 여러해살이 풀로 정식 이름은 양하) 군락지가 있는데 누군가가 파헤쳐놨다.
양애깡을 채취해가지는 않고 그대로 놔둔 것을 보면 사진을 찍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다지 보기 아름다운 풍경은 아니다.
산행로에 쪼그려 앉아서 양애깡을 담았다.
30마였다면 내려가야 했을 것을 90마라서 산행로에서 바로 찍을 수 있었다.
피사체와 1 m 이상 떨어져 있는 경우 오축손떨방은 강력한 기능을 발휘하는 것 같다.
마지막 으름난초 사진에서 'ㄴ'자 형태의 흐릿한 그림자는 보호철망 흔적이다.
원효사 인근에서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으름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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