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4년 9월 20일 토요일
산행지: 무등산 중머리재
산행코스: 동적교 - 증심교 - 당산나무 - 중머리재 - 으름 군락지 - 중머리재 - 봉황대 - 증심사 입구 - 동적교
산행거리: 약 9.3 km
내자가 프로젝트 때문에 느닷없이 달려 나가야 하니 요즘은 맘놓고 주말나들이를 나서지도 못한다.
기껏해야 운동삼아 중머리재나 동화사터 정도를 후다닥 올랐다 내려오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멀리 나갈 형편이 안되니 지난 주에 이어 오늘, 2주 연속 중머리재에 올랐다.
딱히 중머리재가 좋아서는 아니고 중머리재에 으름이 있으니 운 좋으면 잘 익은 으름을 맛볼 수 있을 성 싶어서다.
으름덩굴은 봄부터 여기 저기 눈여겨 봐 뒀었다.
하지만 무등산은 워낙 산행꾼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 쉬이 손을 타니 남아나질 않는다.
다행히 중머리재 으름덩굴 군락지는 덩굴이 무성하기도 하거니와 다른 나무를 타고 높게 뻗어 올라 사람 손이 닫질 않으니 제법 남아 있게 된다.
작은 꽃이 으름덩굴 수꽃, 아래 큰 꽃은 암꽃. 으름덩굴 꽃은 꽃잎이 없으며 꽃잎처럼 생긴 것은 꽃받침이다. 4월말, 평두메골.
수정에 성공한 암꽃의 꽃술이 자라서 으름이 되고 그렇지 못한 꽃술은 말라 떨어진다. 5월 말, 중머리재.
으름. 6월 중순, 시무지기폭포 인근.
으름. 8월 초, 평두메길.
개으름. 8월말, 중머리재.
오늘은 으름을 9개나 찾았다.
근데, 으름이 얼추 두 길 높이에 달려있다.
망원 렌즈로 담아보지만, 그래도 멀다.
짜증이 나기도 하거니와 쩍 벌어진 으름을 보니 군침이 돌아 나무에 올라탔다.
내자가 쫓아 오더니 한마디 한다.
“너 거기서 떨어지면 최소 8주 진단 나온다.”
내자는 나와 한 살 차이다.
평소에는 존대 혹은 반존대를 하다가 내가 철없는 짓을 할 때면 꼭 반말치기를 한다.
못들은 척 더 올라가려고 하니, 한 대 더 후려친다.
“여기서 8주란, 8주 동안은 깁스를 하고 지내야 한다는 말이지.”
“거기다가 재활기간 동안 적어도 1년간은 산을 타지 못할 거야.”
그랬다.
외국서 살 때 교통사고로 무릎이 깨져 8주가 넘게 깁스를 하고 지낸 적이 있다.
그 후 2년 동안 뛰지도 못하고 겨우 걷기만 했었다.
결국 더 이상은 오르지 못하고 나무 밑둥에 매미처럼 바짝 매달린 채 사진만 찍었다.
으름나무, 정확히는 으름덩굴은 으름덩굴과에 속하는 낙엽덩굴식물이다. 바나나와 비슷하다 하여 한국 바나나라거나, 익으면 쩍 벌어진 탓에 임하부인이라 불리기도 한다. 으름덩굴은 전세계적으로 9속 20여종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는 으름덩굴, 여덟잎으름덩굴, 멀꿀, 이렇게 3종이 있다. 으름덩굴은 5~6 개의 작은 잎이 손모양으로 달려있고, 여덟잎으름덩굴은 잎이 6~9개 달려 있다. 여덟잎으름덩굴은 팔손으름이나 개으름으로도 불리며 으름덩굴과 마찬가지로 낙엽덩굴 식물이다.
으름덩굴 잎(왼쪽)과 여덟잎으름덩굴 잎. 둘다 중머리재에서 채취했다.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으름덩굴과 식물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식구는 멀꿀이다.
멀꿀은 멀꿀나무나 멀꿀덩굴이라 하지 않고 그냥 멀꿀이라 부른다.
으름덩굴이나 여덟잎으름덩굴은 겨울엔 잎이 지는 낙엽덩굴이지만 멀꿀은 한겨울에도 파릇파릇 잎이 달려있는 상록 덩굴이다.
전자는 온대성 식물이며 후자인 멀꿀은 난대성 식물이라서 따뜻한 남해안 섬지역이나 제주 등지의 햇볕이 잘드는 야산에서 자란다.
멀꿀이 난대성 식물이라곤 하나 온대 지역인 한반도 내륙에서 멀꿀을 키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륙지방에서 멀꿀을 키워본 사람들에 따르면 1, 2년생은 겨울을 나지 못하고 얼어죽지만 3년 이상된 멀꿀은 내륙의 혹한을 견뎌낸다고 한다.
실제로 경기도 포천의 광릉수목원에는 노지에서 월동하는 멀꿀이 있다 한다.
멀꿀꽃. 5월 중순, 함평.
멀꿀꽃과 어린 멀꿀. 5월 중순, 함평.
멀꿀. 8월 초, 함평.
8월 초 각각 함평과 평두메길에서 채취한 멀꿀(4.1 cm)과 으름(4.0 cm).
8월말 각각 진도 점찰산과 중머리재에서 채취한 멀꿀(7 cm)과 개으름(5.5 cm).
멀꿀(왼쪽)과 으름의 씨앗.
내 고향에서는 멀꿀을 멍이라고 불렀다. 멍이 익어가는 모양새가 꼭 멍이들어가는 모양이라서 멍이라 부른단다. 멀꿀은 잘 익은 멍의 맛이 꼭 꿀같아서 그런대나 어쩐대나? 9월 말에 다시 찾은 첨찰산에는 멍이 익어가고 있었다. 아니 멍이 멍들어가고 있다고 해야하나? 여튼, 멍은 첫서리가 내릴 즈음에 그 맛이 최고조에 이른다.
멀꿀. 9월 말, 진도 첨찰산.
늦더위 탓에 계절을 착각한 멀꿀꽃. 9월 말, 진도 첨찰산.
10월 19일, 첨찰산을 다시 찾다
너무 자주 빼먹어 언급하기 조차 부끄럽지만, 한달에 한 번 정도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갖도록 노력한다.
이번 10월 나들이는 지난 달과 마찬가지로 첨찰산으로 향했다.
잣밤이 익어 떨어지는 철이라서다.
가을 산은 외갓집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 때문인가?
지난 달과 같은 장소지만 어머니는 전혀 싫은 표정이 아니시다.
구실잣밤나무 낙엽 속에서 자라고 있는, 2년생으로 추정되는 멀꿀.
잣밤을 줍고 나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니, 주변 가게에 심어진 멍나무에 멍이 익어 있다. 주인에게 오천원을 건네니 멍 두 개로 어찌 돈을 받겠느냐며 그냥 가져 가란다. 거진 30년 만인가? 멍 특유의 달콤함도, 씨 밖에 없어 먹자할 것이 없음도 30년 전과 다름없다.
11월 12일, 여섯시 내고향
우리나라에서 멀꿀 재배가 가장 성한 곳이 전라남도 고흥군이다.
내 눈으로 확인한 것이 아닌지라 장담은 못하지만, 고흥에는 수 만주에 달하는 멀꿀이 심겨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한번 찾아 보고 싶었지만 정확한 주소를 알지 못해 주저하고 있었는데, 6시 내고향에 고흥 멀꿀이 소개되었나 보다.
평소 TV를 보지 않아 방송은 놓쳤으나 6시내고향멀꿀 사진이라는 검색을 통해서 내 블로그에 들어온 흔적이 있어 알게 되었다.
6시 내고향 홈페이지에 멀꿀 관련 사업자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어 여기로 옮긴다.
거림 수목원: 061-832-6676
이선화: 010-7632-9**8
전남생물산업진흥원 천연자원연구원: 061-860-2600
이제 멀꿀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알았으니, 조만간 고흥을 찾게 될 것 같다.
고흥군 점암면을 가로지르는 우주항공로변 낙석 대비용 안전펜스가 멀꿀 잎으로 뒤덮혀 있다.
11월 16일, 고흥에 가다.
오늘 11월 16일은 음력 윤달 9월 24일이다.
윤달은 빈달 또는 공달이라고 하는데, "천신과 지신이 인간들에 대한 감시를 쉬는 기간으로, 이때는 불경한 행동을 해도 노여움을 피할 수 있다" 한다.
이 때문에 윤달에는 주로 집수리나 이사, 이장(移葬)을 하거나 수의(壽衣)를 만드는 풍습이 전해 내려왔다.
지난 달에 주문했던 수의를 공달이 지나가기 전에 찾고 싶으신 어머니께서 보성에 다녀오자신다.
보성에 다다랐으나 약속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멀꿀이나 몇개 사오자 하고 고흥으로 차를 돌렸다.
고흥읍에 있다는 거림 수목원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찾지 못하고, 고흥군 포두면에서 멀꿀농장을 하는 이선화님께 전화를 했다.
이 분에 따르면 지금 수확되는 멀꿀은 너무 물러져서 먹을 수 없으니 효소용으로만 판매된단다.
가격은 5 kg 한 상자에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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