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내 기억속의 보리딸기, 장딸기... 그리고 접도

레드얼더 2013. 12. 10. 06:57

8월 중봉길.
한참 자라고 있는 억새 사이로 드문 드문 멍석 딸기가 고개 내밀고 있다. 망종을 넘긴지 어느덧 두달이 지났건만 중봉의 멍석딸기는 아직도 여무는 중인가 보다. 900 고지라서 낮은 들녘에 비해 더딘 것일까?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산딸기는 10 여종을 훌쩍 넘긴다. 멍석딸기, 산딸기, 줄딸기, 장딸기, 나무딸기, 섬딸기, 곰딸기, 거지딸기, 겨울딸기, 복분자 등... 장미과 산딸기속의 관목들로서 이를 통털어서 나무딸기 혹은 산딸기라한다.


멍석딸기



그 중에서 가장 흔하기로는 멍석딸기와 산딸기가 으뜸이다. 흔하다는 말은 자생지역이 넓다는 의미인데, 모든 산딸기가 우리 나라 전역에서 자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섬딸기와 장딸기는 주로 남부 해안지방이나 섬에서만 자란다.

무등산에서는 멍석딸기와 곰딸기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다. 중봉에는 멍석딸기가 얼음바위 근방에는 곰딸기가 많이 보이고, 중터리길 아래쪽으로 줄딸기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7월 하순 얼음바위 근방에서 본 곰딸기. 검붉은 잔털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줄딸기



멍석딸기를 보리딸기라 부르기도 한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 요긴하여 쓰여서 보리딸기라는 말도 있고 보리 익는 시기에 익는다 하여 보리딸기라 불렀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일찍 모를 내지만 예전에는 장마철 무렵에 모내기를 했었다. 즉, 망종무렵에 보리를 베면 곧바로 모를 내었으니 보리 수확기와 모내기 시기가 엇비슷하다. 그러다보니 멍석딸기 익는 시기가 모내기 철이라 일부 지방에서는 모딸기라 불렀었다. 이를 보면 보리 베는 시기에 익는다 하여 보리딸기라 했다는 설이 훨씬 설득력 있어 보인다.



어릴적 생각에 멍석딸기를 풀대에 꽂아본다. 장딸기와 달리 작은 멍석딸기는 풀대의 굵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멍석딸기를 보니 내 고향의 보리딸기가 생각난다. 한 개를 따서 입에 넣어보니 시큼한 듯, 떫은 듯 하다. 그러나 40년 동안 내 기억 속 한 켠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보리딸기의 달콤한 그 맛은 아니다.

내 고향에서는 멍석딸기가 아닌 장딸기를 보리딸기라 불렀다. 멍석딸기도 없진 않았지만 장딸기가 더 흔했으며 씨알도 굵고 맛도 또한 더 달콤해서 였을거다. 언덕배기에 있는 몰랑밭가에는 풀이 무성했었는데 특히 보리딸기가 많았다. 농번기때면 아이는 물주전자를 들고 어른들을 따라 몰랑 밭에 오른다. 군소리없이 어른들을 따라 나선 까닭은 보리밭가의 달콤한 보리딸기였다. 어른들이 보릿대를 쥐고 낫질을 시작하기도 전에 아이는 보리딸기 덤불에 엎어져 딸기를 입안에 줏어 넣기 바빴었다.


곰딸기


장딸기는 몇 개만 모아도 어린 내 고사리 손을 가득 채웠었는데... 곰딸기는 장딸기보다 훨씬 작고 내 손은 더 이상 고사리 손이 아니구나.



먹다 지치면 칡잎으로 싸 놓거나 풀대에 꽂기도 하고, 손재주가 좋은 녀석들은 보릿대 바구니를 만들어 거기에 보리딸기를 모았다. 한가득 채워봤자 밭을 떠날 때는 항상 빈 바구니였지만 보리딸기 따먹는 재미에 하루 해가 긴 것을 잊곤 했다.


맛은 그저 그렇다. 단지 내 머리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보리딸기의 기억을 불러내는 도구일 뿐....


대형마트에서 냉동 산딸기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그 편리함에 내 보리딸기의 추억이 서럽다



산딸기(나무딸기)는 영어로 라즈베리다. 서양네들은 우리가 복분자딸기를 재배하듯이 산딸기를 재배한다. 이걸로 파이를 꾸미거나 쨈 등으로 가공한다.


라즈베리 와인과 복분자 와인은 이태리 리유니트사 제품이 저렴한(?) 내 입맛에 맞았다. (이태리 현지 마트에서 3.5유로 정도.)



우리 생활이 서구화되면서 그네들의 산딸기, 즉 라즈베리는 우리 생활에서 멀리 있지 않다. 편의점에는 네덜란드산 라즈베리 잼으로 만든 쿠키를 팔고 있으며 대형마트 냉동고에는 칠레산 냉동 라즈베리가 냉동 전시되어 있다. 와인가게에서는 이태리산 라즈베리 와인을 집어 올 수 있으며 빕스에서 여름철 팥빙수에 끼얹는 빨간 시럽은 아마 라즈베리 코올리 일거다.


알콜함량이 일반 와인의 1/2 정도인 7.5 %의 달달한 스파클링 라즈베리 와인. 굴전이나 홍합전과 궁합이 그만이다. 라즈베리 와인을 마시다보면 나를 취하게 만드는 것이 와인인지 보리딸기의 추억인지 혼란스러워진다.



하산하면서 먹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마땅찮은 곰딸기 몇 알을 칡잎에 싸와 냉장고에 넣어뒀다. 이를 본 아들녀석이 한 알을 집어 입에 넣더니 "아빠 나 나갔다 올 때가지 다 먹지마"라며 나간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소쇄원 근방에서 몇 차례 따먹어 본 멍석딸기가 생각나서 일텐데, 아들에게 있어 멍석딸기의 기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접도. 쥐바위에서 바라본 솔섬바위(오른편)와 말똥바위(왼편)



접도..
사실 별로 끌리지 않는 산행지였다. 장딸기가 접도에서도 자생한다는 한 블로거의 글이 아니었다면 산악회 정기 산행을 마다하고 홀로 무등산에나 올랐을지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접도 해안가 길가에서 장딸기 덤불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반상록식물인 장딸기는 겨울에도 잎이 완전히 지지 않아 찾기에 어렵지 않다.

내년 망종 즈음엔 배낭을 둘러 메고 다시 접도를 찾아볼까 싶다. 오랫만의 해후 기대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인다.




덧붙임


다음 해, 즉 2014년 5월 초, 제주 여행에서 담은 장딸기. 그러니까 장딸기와의 해후는 접도가 아닌 제주도에서 가진 것이다. 장딸기는 맛은 차지하더라도 일단 크기에서 부터 멍석딸기나 곰딸기를 압도한다.



컵은 자판기용 인스턴트 커피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