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산도 문암산 산행 실패기
산행일시: 2015년 10월 9일 (금)
산행지: 흑산도 문암산
산행코스: 노래비 - 상라봉 - 노래비 - 마리재 - 섬조망지 - 칠락봉 (큰재) - 전디미잔등 - 비리(전디미)
산행거리: 4.97 km
산행시간: 6시간 1분
금요일이 한글날인 3일 연휴를 맞아 흑산도를 찾았다. 2박 3일 일정으로 들어갔으나 일요일에 주의보가 내린다는 말이 있어 일정을 단축하고 둘째날인 토요일에 뭍으로 나왔다.
첫날
아침 목포연안여객터미널은 관광객으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요즘은 흑산도 홍도는 관광성수기가 따로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오늘 오전은 흐리다가 정오부터는 구름이 약간 낀 맑은 날이 될 거란다.
7시 50분에 목포항을 출발한 배는 한 시간 후인 8시 50분 도초항에 기항한다. 대여섯 명의 승객이 내리고 그만큼이 오른다. 승객 중 열에 아홉은 관광객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흑산바다 파고는 1 ~ 1.5 m. 흑산바다를 건너는 내내 쾌속선은 작은 바이킹 놀이기구였다. 비명은 간간히 이어졌고 승객 다섯 중 한 명은 토한 듯 싶다. 흑산항에 내려 사진을 찍은 시간이 10시 5분. 하선 시간을 감안하면 2시간 5분 정도 걸렸다.
우리를 내려준 쾌속선은 이제 홍도로 떠난다. 사진의 쾌속선은 동양고속훼리 파라다이스호로 우리가 타고온 남해퀸호와 비슷한 시간에 접안 했었다. 파라다이스호 정원은 375명, 남해퀸호는 349명이란다.
택시를 잡을랬더니 죄다 예약이 되어 있단다. 여행사에서 선점해 버렸을 거다. 하는 수 없이 10시 40분 흑산도 공영버스에 올랐다. 근데 하필이면 섬을 시계방향으로 도는, 그러니까 동면 방향을 먼저 가는 버스였다. 서면방향으로 가는 버스였다면 상라고개 노래비까지 4.9km, 약 15분이면 충분했을 것을 20.7 km나 도는 탓에 한 시간이 걸렸다.
흑산도아가씨 노래비가 있는 상라고개에 내리니 관광객을 뱉아낸 대형 관광버스 너댓 대가 쉬고 있다. 상라봉에 올라 흑산항을 조망하고 내려와 상라봉 반대편 시멘트로 포장된 길로 올라가니 등산로가 아니라 상라정이 서있다. 때마침 거기에 있던 국립공원직원이 등산로는 노래비에서 흑산일주로를 따라 마리(馬里, 모지미)쪽으로 400여 m를 내려가야 나온단다.
이곳의 지명은 마리재다.
순 우리말로는 모지미재.
국립공원측에서 설치한 이정표상으로는 마리재에서 여기 목교까지 거리는 510 m. 하지만 내 GPS로거로는 마리재에서 여기까지 549 m가 떨어져 있다. 오차는 39 m이며, 오차의 원인은 GPS로거에는 사진을 찍느라 한 장소에서 이리 저리 움직인 거리까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이 지점은 GPS로거 상으로 마리재에서 1.03 km, 목교에서는 481 m 떨어져 있다.
이를 국립공원 이정표상의 거리로 환산하자면, 목교에서 약 474 m가 떨어져 있으며 마리재에서는 984 m 거리에 있는 지점이다.
여기서 마리재나 목교까지 거리가 얼마인들 무슨 상관일까?
그것은 이 부근이 진말재(진리재)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서 마리재 방향으로 약 40 m 지점이 진말재다.
사진에 있는 저수지가 흑산 진리 제2저수지다.
저수지 아랫마을이 면사무소 소재지이며 흑산중학교가 위치한 진리(鎭里, 진말)며 그 너머로 보이는 마을이 예리(曳里, 예미)다.
흑산일주로가 뚫리기 전에는 흑산 서면사람들은 진말재를 통해 진리로 넘어와서 일을 보거나 진리나 예리에서 여객선을 타고 육지로 나갔다.
뱃시간을 맞추려 새벽밥을 해먹고 어둠을 헤치면서 산길을 쫓아 예리로 갈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진말재를 넘는 것이었다.
어두운 새벽, 한여름 뙤약볕, 한겨울의 눈보라를 무릅쓰고 넘어야 했던, 서면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가 바로 진말재다.
바로 위 사진은 진말재를 40 m 지나서, 아래 사진은 진말재에 225 m 남겨둔 지점에서 담은 것이다. 이 글의 모든 사진은 찍은 시간 순으로 배치되었지만 문맥에 맞추다보니 아래 사진만은 그렇지 못했다.
섬조망지에서 큰재까지는 0.36 km가 남았다. 근데 큰재의 위치가 불분명하다.
어떤 이는 칠락봉 정상이 큰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칠락봉과 큰재는 서로 다른 곳이란다.
장도와 홍도 조망이 참 좋다.
칠락봉 정상이다.
정상표지석 옆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마리재 1.59 km / 면사무소 1.48 km / 소사리 2.1 km
마리재까지 1.59 km 거리라면 칠락봉 정상이 바로 큰재라는 말인가?
(이해가 안된다면 섬조망지 이정표에 큰재까지 0.36 km, 마리재까지는 1.23 km라 적혀있었던 것을 떠올리자.)
깃대봉을 오르려면 소사리(少沙里, 잔모새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아래 보이는 저수지는 천촌리(淺村, 여티미) 저수지로 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저수지다. 그리고 천촌리 앞에 떠있는 섬은 영산도다. 영산도가 보이는 쪽을 동면이라 하고 장도와 홍도가 보이는 쪽을 서면이라 한다.
이 사진을 찍고 나서 2~3 분 뒤 너덜 사이에 발이 빠져 발목과 종아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오랫동안 쌓인 낙엽이 너덜 틈새를 덮고 있었던지라 피할 도리가 없었다. 골절은 아니었지만 몸무게가 실린 탓에 발목에 가볍지 않은 통증이 느껴진다.
이정표가 나온다. 근데 칠락봉으로 되돌아 가거나 소사리로 하산하란다. 하지만 쫄지말고 소사리쪽으로 더 가보자.
전디미잔등을 50여 m 남겨두고 황칠나무 어린 잎을 담고 있는데 인기척이 있다. 마리재 이후로 처음 만난 사람이다. 뭍에서 오신 산행꾼이셨다.
전디미잔등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새로 만난 이정표도 앞선 이정표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칠락봉으로 되돌아 가거나 소사리로 하산해라!
다행히 바로 옆에 개인이 세워놓은 이정표가 있다. 하지만 벌써 오후 4시 18분, 식생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남기면서 오다보니 마리재에서 여기까지 한 시간 거리인 2.69 km를 걷는데 4시간 33분 51초가 걸렸다. 마리재에서 오후 1시 17분전에 출발했었으니... 곧 해가 질 것이다. 헤드랜턴을 준비해 왔지만 비정규 산행로에 다리까지 절고 있는 입장에서 어리석은 행동은 삼가는게 좋겠지.
그렇잖아도 실처럼 가느다란 산길이 칡넝쿨과 엄청 큰 고사리로 뒤덮혀 있어 길인지 아닌지를 분간조차 할 수 없다. 주변에 벌초를 마친 무덤들이 서너 봉분 보이는데 어떻게 올라와서 벌초를 했을까? 혹시 내가 길을 놓친 것은 아닐까?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산길을 벗어났다. 다음 사진은 비리(比里, 전디미) 마을 뒤편 흑산일주로에 서서 전디미잔등을 올려다 보며 찍은 것이다.
하늘다리 남쪽 끝, 그러니깐 곤촌(昆村, 곤디미) 방향 끝에서 담은 것이다. 곧 해가 질 것 같은데 대장도가 가리고 있어서 아쉽다. 그나마 좋은 장소를 찾아서 곤촌 쪽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예리의 마트에 갔다오는 동생들을 만났다. 동생들이 센나리에 멋진 일몰 포인트가 있다며 태워다 준다.
센나리 일몰이다. 일몰은 생각조차 못했던지라 망원렌즈를 챙기지 않았더니 많이 아쉽다. 오른편에 있는 섬이 홍도로서 해질 무렵이면 석양에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고 해서 홍도(紅島)라 불렀단다.
앞서 말했지만 장도와 홍도가 보이는 쪽이 서면이다. 그리고 해는 서쪽으로 지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 정도 석양빛이면 홍도를 붉게 물들이고도 남지 않을까?
해가 수평선 아래로 지고 나서 담아 본 홍도와 가거도다. 홍도는 우측이며 가거도는 좌측에 있다. 가거도 사진에서 불빛은 아마 오징어잡이 배일 것이다.
홍도
가거도
문암산을 놓친 대신 멋진 일몰 광경을 얻었다.
그야말로 새옹지마다.
이튿날
배가 출발한지 약 20분 후에 GPS 로거를 켠 탓에 완전한 궤적은 얻지 못했다. 기록된 구간은 76.4 km / 3시간 16분이었으며 카페리의 속도는 평균 25 km/h였다.
2박 3일 일정을 현지에서 급히 1박 2일로 변경하다보니 목포 - 흑산간 쾌속선에는 자리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흑산 - 우수영간 카페리(뉴드림호, 2100톤)를 탔는데, 시간은 4시간으로 두 배가 걸렸지만 여행은 훨씬 쾌적했던 것 같다. 일단 쾌속선과 달리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배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웬만한 파도에도 배가 흔들리지 않다는 것이 좋았다.
좌측에 있는 섬이 가도, 가운데가 대흑산도, 우측의 작은 섬이 호장도다. 사진에서는 잘렸지만 사진 밖 우측에는 대둔도와 다물도가 있다. (다음 지도에 표기된 지명을 따랐으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측으로 보이는 섬이 우이군도, 간단히 말해서 우이도다. 목포 - 흑산간 쾌속선의 우이도 북쪽으로, 우수영 - 흑산간 카페리는 우이도의 남쪽으로 지나는 항로로 다닌다.
사진 중앙에 있는 섬이 화도, 화도의 우측이 서소우이도다. 화도 뒤편의 섬은 우이도고...
사진 맨 우측이 동소우이도, 좌측으로 서소우이도, 화도가 있다. 뒤에 보이는 섬은 우이도 본섬이다.
배는 해남 우수영항에 6시 05분에 접안했다. 우수영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도 있지만, 여전히 운항 중인지는 모르겠다. 최근 불경기 여파로 제주로 가는 여객선 예닐곱 항로가 휴폐업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