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이야기

대청봉 바람꽃과 한계령의 나래회나무

레드얼더 2015. 7. 5. 15:51

산행일시: 2015년 7월 4일 (토)
산행지: 설악산 대청봉 (1,708m)
산행코스: 한계령 - 대청봉 - 오색탐방센터 - 오색버스터미널
산행거리: 14.9 km
산행시간: 9시간 18분



1년 전부터 고대하던 대청봉 바람꽃 산행을 다녀왔다. 나홀로 산행이다.

애초엔, 원거리 산행에서 산악회 산행만큼 편한게 어딧겠냐 싶어 지역 산악회를 뒤졌다. 100 개쯤 뒤졌더니 다행히 6월 하순에 설악산을 가는 산악회가 딱 한 군데 있다. 게다가 무려 28인승 버스로 간단다. 허나 메르스를 우려한 내자의 반대로 무산... 혼자라도 가겠다면서 계속 징징댔더니 결국 내자가 허락(?)을 한다. 메르스가 잠잠해진 탓이 컸겠지만, 결국 금요일 동서울터미널행 심야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동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3시 5분, 정확히 3시간 10분 걸렸다. 근방 사우나에 들러서 누웠다가 몸을 씻고 예약해둔 6시 25분발 첫 버스를 타고 한계령에 내린다. 집에서 만들어 온 치킨 샌드위치와 예다손 떡 한 팩으로는 부족할까 싶어 한계령 매점에서 찰옥수수를 하나 산다.

산행 시작 시간은 08:56:02.
안개낀 한계령은 선선하다 못해 추웠다.






이번 산행의 주목적은 바람꽃 탐방이지만 나래회나무에 대한 기대도 가볍지는 않다. 나래회나무는 노박덩굴과 화살나무속에 속하는 갈잎떨기나무인데,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열매에 멋드러진 나래(날개)를 가진 녀석이다.

첫 나래회나무다. 한계령과 한계령 삼거리의 중간 위치인 해발고도 1,300 m 지점에서다. 주변에 분비나무 고사목이 하나 둘 씩 나타나는 고도라고 하면 좀 더 현실적일까? 여튼, 잎이 큼직해서 같은 화살나무속인 참빗살나무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열매에 길고 멋드러진 날개가 달려있다.







대청봉까지 3.2 km 남은 지점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보니 오후 1시 35분이다. 하늘과 나무와 꽃, 심지어는 다람쥐와의 놀음에 정신을 팔면서 느릿느릿 능선을 오르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다.

하산 중이던 60대 산행객 한 분이 내게 대피소에서 자고 갈거냐고 묻는다. 오색으로 하산해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갈거라고 했더니 지금 몇신 줄 아느냔다. 이런 속도면 마지막 버스를 타기 힘들거라며 한계령으로 하산하거나 오색에 전화를 해 숙소를 잡아두란다. 너무 늦은 시간에 능선을 오르는 내가 세상 모르는 철부지같아 걱정되었을까?









나도 불안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온 설악인데 설악을 포기할까? 끝청에서 안개 걷힌 공룡능선 조망에 감탄하고 중청에선 발아래 놓인 운해를 즐기다가 매점에 들러 허기를 메운 뒤 대청에 오르니 3시 20분.








바람꽃이다.
2월 여수 돌산에서 시작한 바람꽃 행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녀석이다.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 여타 바람꽃과 달리 이녀석 이름은 그저 '바람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국립공원이 유일한 자생지로 알려져 있다.






바람꽃은 일년 전 이맘때쯤 스위스 알프스 고산 식물원에서 처음 만났었다. 자신을 anemone narcissiflor라 알려줬는데 우리말로는 바람꽃이다. 그러니깐, 오늘이 두 번째 만남인 것이다.






허겁지겁 바람꽃을 담고 나서 정상 표지석까지 찍고 나니 3시 44분. 마지막 버스가 6시 20분에 있으니 정확히 2시간 36분 남았다. 나는 이제부터 오색버스터미널까지 날아야 한다.








몇번을 쉬며 겨우 도착한 오색버스터미널에서 표를 구입한 후 GPS 로거를 끈 시간이 18:05:57. 길가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올려다본 한계령이 참으로 아름답다. 허나 어쩔거냐... 난 카메라를 꺼낼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지쳐 있으니...




1. 오색버스터미널(일반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작은 슈퍼에서 표를 팔며 승차장은 도로변임)에서는 오로지 현금만 받음. 카드불가. 2. 주변 택시기사들의 신고때문에 규정된 승하차 장소가 아니면 잘 안태워줌. 당일 오색등산로 입구에서 2명이 승차거절 당함. 3. 표 판매소를 찾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표를 구입 못해도 일단 버스에 오르면 됨. 원통 터미널에서 10분간 정차하는데 그때 사오라고 함.




덧붙임: 10월 14일, 들꽃친구가 대청봉에서 찍어다준 바람꽃 씨방.